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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해외 영화

그의 이유 있는 타락 영화 <조커> 줄거리,정보,결말

▶ 영화 조커 (2019)

[영화 조커의 줄거리]

1981년 파티 광대이자 스탠드 업 코미디언인 아서(호아킨 피닉스)는 범죄, 실업자들이 난무하는 고담에 어머니 페니(프란시스 콘로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서는 망상을 하고 말도 일관성 없게 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뜬금없이 웃음을 터뜨립니다. 어느 날 비행 청소년들이 아서를 공격하는 일이 있었고 동료 랜들은 아서를 지켜주기 위해 총 한 자루를 건네줍니다. 그런데 어린이 병원에서 아서의 주머니에서 총이 떨어지고 랜들은 아서의 총이라고 거짓말을 해서 아서는 해고를 당합니다. 지하철에서 광대 분장을 하고 있던 아서는 술 취한 웨인 엔터프라이즈에서 일하는 남자 3명에게 구타를 당하는데 순간 아서는 자기 방어를 위해 총을 사용하여 두 명을 죽이고 나머지 한 명도 쫓아가서 죽이게 됩니다. 이 살인 사건을 토마스 웨인이 비난하며 성공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자들을 광대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고담의 부유층에 대한 시위가 시작되고 시위대는 아서를 상징하는 광대 마스크를 착용하기 시작합니다. 아서는 이웃 소피(재지 비츠)를 좋아하였는데 곧 있을 스탠드 업 공연에 그녀를 초대합니다. 소피는 아서의 스탠드 업 공연에 참석하지만 공연은 형편없었습니다. 그러고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립니다. 아서의 우상인 인기 토크쇼의 진행자인 머레이 프랭클린이 아서가 한 스탠드 업 공연 클립 영상을 보여주며 아서를 조롱하기 시작합니다. 아서는 페니가 토마스 웨인에게 쓴 편지를 가로채고 자기가 토마스의 사생아라는 사실을 숨긴 어머니를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아서는 웨인 저택에서 어린 아들 브루스 웨인을 만나지만 집사 알프레드 때문에 도망을 치고 지하철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둘이 방문하고 페니는 뇌졸중으로 입원을 합니다. 아서는 토마스의 행사에 몰래 참석해서 토마스를 만나지만 토마스는 페니가 망상증이 친어머니가 아니라 말을 합니다. 아서는 부정하며 아캄 병원에 가서 페니의 파일을 훔쳐 1950년대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아서를 입양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페니는 학대로 체포되어 감옥에서 죽은 남자와 아서를 같이 키웠던 것이었습니다. 혼란에 빠진 아서는 강제로 소피의 집에 들어가게 되고 겁에 질린 소피는 잘못 들어왔다며 떠나라고 합니다. 알고 보니 그 둘의 관계도 아서의 망상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서는 병원에서 배신감을 느끼고 어머니 페니를 베개로 질식시켜 죽입니다.

[이유 있는 타락의 결말]

어느 날 아서의 스탠드 업이 인기를 끌며 마침내 머레이 쇼에 초대를 받게 됩니다. 그가 방송을 준비하는데 도움을 받기 위해 전 동료인 게리와 랜들을 집으로 부르는데 이는 아서의 복수였으며 랜들을 죽이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평소 자신에게 잘해준 동료 게리는 살려줍니다. 마침내 스튜디오로 가는 아서는 두 형사에게 쫓기게 되지만 광대 분장을 한 시위대로 가득 찬 열차 속에서 경찰을 을 따돌리고 그 과정에서 한 형사가 실수로 시위대를 총으로 쏴 난동이 일어나며 아서는 무사히 스튜디오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아서는 머레이에게 자신을 조커라고 소개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쇼가 시작되어 아서가 등장하고 그는 이상한 소리를 시작으로 열차에서 한 살인을 생방송에서 고백을 하고 사회가 어떻게 억압하고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을 버리는지 불평하며 머레이가 자신을 조롱한 것을 비난합니다. 위협을 느낀 머레이는 경찰을 부르겠다고 협박을 하지만 그 순간 아서는 옷 안에 숨겨둔 총을 꺼내 머레이의 머리를 쏘게 됩니다. 그리고는 고담 전역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폭도 중 하나가 웨인 가족을 코너로 몰고 토마스와 그의 아내 마사를 죽이고 브루스는 살려줍니다. 아서는 살인죄로 체포당하는데 앰뷸런스를 탄 폭도들이 아서를 태운 경찰차를 들이받고 아서를 풀어주고 아서는 차 위에서 춤을 춥니다. 모두의 칭송을 받으면서 아서는 흐르는 피로 입가를 문질러 완벽한 조커의 모습을 만듭니다. 정신치료감호소에 구속되어 상담사와 이야기를 하던 아서는 갑자기 재밌는 농담이 생각났다고 얘기합니다. 상담사는 그 농담이 뭐냐고 묻자 아서는 미소를 짓곤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서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를 신발에 묻힌 채 치료감호소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영화가 끝이 납니다.

▶ 영화 조커 (2019)

[주관적인 영화 조커 리뷰]

사실 아서는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병이 남에게 불편을 야기할 것을 알고 미리 작은 카드를 만들어 보여주거나 자신이 힘들다고 무너진 것이 아니라 남을 먼저 이해하기 위해 움직이고 아픈 어머니를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서는 조커가 되었다. 평범한 시민이었던 아서는 사람들의 불친절에 대응하듯 조커로 변하여 고통을 전파하는데 폭력과 폭동으로 대응하는 모습이 옳다고는 생각 안 하지만 침묵으로만 대응하는 것도 답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코미디는 주관적인거에요 머레이"라고 조커가 말한 대사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하는데, 미디어는 거짓 프레임을 씌우기 일쑤였고 충동적 살인으로 마치 정의를 구현한 듯 자신감을 얻어가는 아서는 또 "잘못된 것은 미치지 않은 사람이다"라는 말에 이미 많은 폭도들이 동조하며 조커를 따르는 것이 바로 악당의 영웅화이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당당함과 무례함을 잘 구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고 싶은 말을하고 행동하고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본인의 행복을 찾는 게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싶다. 결과적으로 그가 조커로 변한 것이 그의 선택인지, 아니면 그의 본성 때문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고 영화로 보는 세상과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에 대한 생각도 한번 해보게 되는 영화 <조커>였습니다.